세계 8위 산유국 UAE, 원전으로 ‘탈석유’ 미래 연다

Updated: Sep 9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3시간쯤 달리면 끝없이 보이는 사막 한가운데

웅장한 콘크리트 건축물 4개가 나타난다. 한국이 처음으로 수출한 원자력발전소, 바라카 원전이다. 지난

13일 섭씨 40도를 가볍게 넘기는 더위, 숨이 턱턱 막히는 모래바람 속에서도 발전소는 묵묵히 돌아갔다.

발전소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전선은 거대한 송전탑을 타고 사막을 건너 도시 지역으로 전력을 실어

나른다. UAE 산업을 움직이고, 마천루에 빛을 밝힌다.

한국은 2009년 UAE 원전 수출 계약을 따낸 뒤 바라카에 한국형 원전 APR1400 4기를 지었다. 1호기는

지난해, 2호기는 올해 본격적인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바라카 원전이 상업운전을 시작한 뒤 한국 언론이

현장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호기와 4호기가 각각 내년, 내후년에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하면

바라카 원전은 UAE 전력 수요의 25%를 책임진다.


“한국 기술력·운영능력 높은 평가 받아”


현지에서 만난 박상철 한국수력원자력 바라카2발전소 운영부장은 “전 세계에서 온 엔지니어가 바라카원

전에서 함께 일하는 데, 원전을 만든 한국의 기술력뿐만 아니라 운영능력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UAE는 세계 8위 산유국이지만, 원전이야말로 ‘기후변화의 검증된 해결책’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지난해

UAE는 중동 국가 중 처음으로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선언하고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전원

(電源)에 투자를 늘리며 이른바 ‘탈(脫)석유’로의 전환을 펼치고 있다. 특히 바라카 원전의 성공을 본보기로

인근 중동 산유국으로의 원전 사업 진출까지도 꾀한다는 계획이다.

오베이드 알케트비 전 주(駐)호주 UAE 대사는 “과거 UAE는 산유국으로서 석유 자원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데 집중했다면, 현재는 원자력 등 새로운 에너지원을 기꺼이 도입하고 기술을 발전시켜 석유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국가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UAE 전 대통령의

정책 자문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바라카 원전 사업에 대해 “좋은 거래이자 성공한 프로젝트”라며

“한국은 견고한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와 한수원 등 공기업, 민간 기업은 이미 ‘팀 코리아’를 구성해 해외 원전 사업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 8조원 규모의 체코, 40조원 이상의 폴란드 등 신규 건설 사업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원전 업계는 바라카에서의 ‘성공 경험’이 수출 대상국별로 맞춤형 전략을 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사막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도 예산과 공기(工期)를 맞춘 바라카에서의 사업 역량은 한국의 가장

큰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UAE 바라카 사업 수주 당시 한국이 제시한 금액은 경쟁자인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아레바가 제시한 금액보다 절반 이상 낮았다. 미국과 프랑스가 다른 원전 사업을 수년씩 지연시킨

것과 달리 한국은 바라카 원전을 제때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경남 창원

두산에 너빌리티를 찾아 “예산에 맞게 적기에 시공하는 능력인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은 전 세계 어느 기업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원전 기업의 경쟁력” 이라고 강조했다.

중동 지역의 기후 조건에서도 원전을 문제없이 건설· 운영한 경험이 한국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했다는 분

석도 있다. 한수원이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계통 사업의 단독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도 바라카 사막에

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지 여건에 맞는 설비 개선을 이루었기

때문에 다른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떤 곳에서든 수주했을 때 이를 반영할 수 있다”며 “한국의

이러한 경험은 어떤 경쟁국도 갖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라카의 성공을 다른 나라에서도 이어가기

위해선 정부 정책 일관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게 현지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처럼 급격한 정책 변화는 한국에 대한 파트너 국가의 신뢰를 해칠 수 있다는 의미다.

10년째 UAE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최성회 칼리파대 기계공학부 교수(한·UAE 공동 R&D 기술

센터 이사)는 “UAE 입장에선 (탈원전 당시) 한국의 정책 변화를 두고 ‘자신들이 한국을 생각하는 만큼

한국이 자신들을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며 “한국이 앞으로도 다른 나라와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하려면 정책 방향의 지속성을 길게 가져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 “정부 원전정책 일관성 보장돼야”


원전 전문가도 원전의 수출 산업화를 위해서 ‘K원전’에 대한 세계적인 믿음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의 가장 큰 강점은 바라카 수출에서 얻은 ‘신뢰감’과 UAE가

한국에 보여주는 ‘만족감’”이라며 “사막에서의 원전은 전 세계적으로도 경험이 없는 어려운 공사였는데

한국은 적기에, 예산도 증액하지 않고 해결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한국은 원전 기술에 비해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했는데, 이 신뢰를 바탕으로 다른 국가의 투자를 받아 제3국에 공동 진출하는 가능성도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앙일보]